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라페준타 제국 (문단 편집) === 급조된 제국 === 트라페준타 제국은 건국 이후 아나톨리아의 흑해 연안을 따라 동쪽과 서쪽으로 영토를 착실하게 넓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4차 십자군으로 동로마 제국 중앙 정부가 붕괴되면서 로마령 아나톨리아 일대에 권력의 공백이 생긴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나톨리아에서 할거하던 지방 귀족들이 테오도로스 1세 아래 니케아의 이름으로 결집하였고 니케아가 존망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기고 니케아의 지배가 굳건해지면서 더 이상의 확장은 무위로 돌아갔다. 더구나 트라페준타 제국은 체계적인 통치 체제나 군사 정책, 국경 방어 대책 등이 효과적으로 운영되지 못해 언제든지 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1214년, 위기를 수습한 니케아는 트라페준타의 동맹인 라틴 제국이 세르비아와의 전쟁으로 정신없는 틈을 타 파플라고니아 수복을 노리고 트라페준타를 공격하였다. 그와 동시에 니케아와의 안티오키아 전투에서 술탄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한 룸 술탄국 역시 니케아와 야합하여 트라페준타 제국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였고 트라페준타 제국의 서부 연안 도시인 시노페가 함락되고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포로로 붙잡히고 만다. 룸 술탄국의 술탄 케이카부스 1세(1211~1220)는 알렉시오스 1세의 석방을 대가로 제국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공물을 바치고 병력을 차출하며 신종의 예를 표할 것을 요구했고 선택지가 없던 알렉시오스 1세는 이를 받아들여 풀려난다. 풀려난 황제는 수도 [[트라페준타]]에 틀어박혀 죽을 때까지 내정에만 전념하였다. 케이카부스 1세는 시노페를 점령하여 오랜 염원이던 [[흑해]] 방면 항구를 손에 넣었다. 술탄은 이를 자축하여 자신의 업적을 [[아랍어]]와 [[그리스어]] 두 문자로 새겨 영원히 기억하게 했다. 이 기념물은 시노페가 [[시노프]]가 된 현대시대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 동로마계 세력이 점유하고 있던 [[아탈레이아]] 역시 점령하여 지중해 방면 항구도 손에 넣었고 이로써 [[룸 술탄국]]은 명실상부한 소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 한편 룸 술탄국의 침공은 트라페준타 제국에 치명상을 안겼다. 서부 영토를 상실한 트라페준타 제국은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유일한 길을 잃어 로마 제국의 정통 황제를 가리는 제위 경쟁에서 탈락했다. 상당한 국력을 잃은 제국은 1222년 [[알렉시오스 1세(트라페준타 제국)|알렉시오스 1세]]가 40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 [[트라페준타]]와 인근 지역, 그리고 [[크림 반도|크리미아]] 지역만이 제국의 영토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